거품일까? 기술주 급등에서 20년 전 닷컴버블을 되돌아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실물경제 침체 국면 속
기술주 가격 폭등, IPO 급증 등 닷컴버블 재연한 듯
엄청난 부채에 기반한 거품 부작용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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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한겨레 기자
박현 한겨레 기자 2020년 10월4일 14:00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세계경제가 마이너스 성장 국면에 빠져있는데도 올해 주식시장은 전세계적으로 활황세를 보였다. 9월 들어 조정 양상을 보이긴 했지만 지난해 말 대비로 보면 주가는 아직도 상당히 많이 올라간 상태다. 실물경제와 자산가격의 괴리 현상을 넘어, 주가 버블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다.

 그 중심에는 애플·테슬라 등 미국 기술주들이 상장돼 있는 나스닥 시장이 있다. 나스닥 지수는 지난 9월2일 사상 처음으로 1만2천선을 넘었다. 지난해 말 대비 상승폭은 무려 34%에 이른다. 그 이후 조정을 보였지만 지수는 1만1천선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상승률은 24%. 경제가 성장하는 평상시 같으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겠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숫자다.

 우리나라의 코스닥도 나스닥과 비슷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코스닥은 지난 9월15일 900에 근접했는데, 이는 지난해 말 대비로 상승률이 34%다. 공교롭게도 나스닥 상승률과 동률이다. 이후 조정을 보였지만 올해 상승률은 약 27%를 기록 중이다. 주력시장인 코스피는 연중 최고점을 기록했던 9월15일까지 상승률은 11%, 현재는 약 6%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출처=Leonardo Akiyama Leo Akiyama/Pixabay
출처=Leonardo Akiyama Leo Akiyama/Pixabay

 그렇다면, 지금 주가 수준이 과연 버블이라고 할 수 있을까. 흔히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고평가됐는지 여부는 기업 이익에 견줘 주가가 얼마나 되는지를 가지고 따진다. 주가수익비율(PER)이 대표적으로 활용되는 지표다. 이는 현재 시장에서 매매되는 특정 회사의 주식가격을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인데, 주당순이익은 앞으로 12개월간 회사가 벌어들일 순이익을 추정해서 계산한다.

 문제는 코로나19 상황에서 향후 1년간 기업 이익을 제대로 추정할 수 있는지다. 코로나19 사태가 조기에 종결되면 다행이겠지만, 반대로 사태가 악화하면 기업들이 입을 타격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주가수익비율 같은 기존의 잣대로는 버블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경제현상에 대해 나름 냉철한 분석을 내놓기로 정평이 난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칼럼을 실었다. 이 매체는 코로나19 사태로 기업 이익 추정이 불확실한 만큼 버블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주식시장에 나타나는 이례적인 현상들을 잘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가지 현상에 주목했다.

 첫째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높은 일부 주식의 가격이다. 이 칼럼은 지난 8월19일 기준으로 애플 주가는 시가총액 2조달러를 넘어선 첫 미국 기업이 됐고, 테슬라는 올해에만 주가가 4배 올라 시가총액이 포드·도요타·폴크스바겐 시가총액을 합한 것보다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또한 렌터카 업체인 허츠는 올해 파산보호신청을 한 이후 주가가 10배나 올랐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두번째는 개인투자자의 직접 투자 열풍이다. 주식거래 앱인 로빈후드가 수수료 무료를 내걸어 젊은 투자자들을 대거 유치했는데, 올해만 300만개의 계좌가 개설돼 이용자가 1300만명이 넘었다. ‘미국판 동학개미’ 현상이라 할 만하다.

 세번째는 기술기업들이 대거 주식시장에 상장하고 있는 점이다. 미국에선 비상장 기업을 인수해 상장시키는 스팩(SPAC) 붐이 일고 있다. 올해 벤처기업들의 기업공개(IPO) 규모는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때를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매체는 지적하지 않았지만 특이한 현상으로 여기에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사기’로 의심되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의 탐욕이 넘치면서 주식시장이 정점에 다다를 때는 항상 사기가 만연했는데 그런 조짐이 보인다. 미국 수소전기차 업체 니콜라의 화려한 등장과 갑작스런 추락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자산가격에 버블이 생겼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언제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금융시장의 오래된 속설이기도 하다. 최근 나스닥 주가가 조정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를 두고 버블이 터지는 초기 단계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 의장이 1996년 12월 주식시장 참여자들에게 ‘비이성적 과열’이라고 경고를 날렸지만 그 이후에도 닷컴버블이 2000년 3월까지 3년 넘게 더 지속했던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중앙은행가라는 오명을 지금은 쓰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마에스트로’로 불릴 정도로 추앙을 받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시장은 촉각을 곤두세우던 때였다. 그랬지만 이미 불타오르기 시작한 주식시장은 식을 줄을 몰랐다. 그만큼 버블은 한번 시작되면 여간해선 정책당국도 제어하기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국내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 중에는 아직 이런 버블을 경고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주식시장이 활황을 지속해야 돈을 더 벌 수 있는 증권사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아쉬운 대목이다. 다만, 대우증권 사장 출신의 홍성국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9월12일 인터넷 매체(삼프로TV)에 나와 한 발언이 주목을 끌었다. 국회의원의 몸이 됐지만 명성있는 시장분석가 출신답게 여전히 시장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뉴딜펀드와 관련해 출연한 자리였는데 대담자가 현재 시장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역사상 부채가 가장 많은 상태에서, 역사상 금리가 가장 낮은 상태에서, 역사상 돈이 가장 많이 풀린 상태에서, 그리고 글로벌 질서가 무너진 상태에서, 새로운 기술이 막 나오는 이런 고차방정식을 푼다는 게 굉장히 어렵다. 한가지 우려하는 것은 쏠림현상이 상당히 강하다는 점이다. 글로벌 기업에 투자할 때도 몇몇개만 하는 게 맞긴 한데 쏠림현상이 시간적으로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홍 의원도 현재 시장 상황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다는 점을 피력한 것이다. 특히 그는 닷컴버블 때와 비교해서 지금 국면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런 국면이 (내가) 금융기관에 들어온 이후부터 수시로 있었는데 이번 경우가 가장 센 거 같다. 상승률로 보면 90년대가 훨씬 셌지만 그때는 그 이전에 3분의1 정도 떨어진 상태에서의 리바운드(반등)와 아이티(IT)로의 전환이라는 두가지가 있었다. 이런 거대한 것을 놓고 시장을 논하는 게 힘들고 어렵고 건방진 얘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1년 후, 6개월 뒤, 3개월 뒤에 자신이 투자한 회사 주식이 올라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런 속도와 방향성을 갖고 계속 갈 수 있겠느냐.”

 특히 그는 현재 주식시장이 엄청나게 많은 부채를 기반으로 올라갔다는 점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원래 버블의 끝은 예측의 영역이 아니다, 항상 몰랐다. 일본이 1989년에 주식시장 PER가 70배였다. 30년 지났지만 아직도 그 시세를 회복하려면 한참 남았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마지막 피크 국면에 가까워가고 있는 건 사실 아니겠는가.(중략) 어깨 근방인 거 같긴 한데 그 위가 얼마인지는 전혀 모르겠다. 심하게 우려 섞인 생각을 갖고 있다. 이대로는 문제가 있다. 주식만이 아니라 신용대출 같은 정상적이지 않은 대출이 너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국회에서도 내가 질문했다. 이대로 가면 나중에 큰 일 난다. 신용이나 편법대출 이런 게 지금 통제를 벗어난 상황을 통해서 가격이 지지되는 거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홍 의원이 여러 가지 포인트를 얘기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거론한 부채에 기반한 버블의 위험성에 주목하고 싶다. 경제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빚은 자산가격에 거품을 일으키는 역할뿐만 아니라 이를 더 유지시키고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주식이나 주택 가격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이들은 빚을 낼 수 있게 되면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격이 더 오를 경우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이들마저 뛰어들면서 거품은 더 팽창하게 되고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물론 모든 투자자들이 이득을 보면 문제가 없을 수 있겠으나, 항상 버블의 끝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빚을 내어 투자한 이들은 시장 급락 시에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고 수년간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나스닥도 닷컴버블의 열기로 2000년 3월 5천선을 잠시 넘었다가 꺾인 뒤 다시 이 고지를 밟는 데는 꼭 15년이 걸렸다.

 위대한 과학자였던 아이작 뉴턴의 이야기는 제아무리 명석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탐욕이 넘치고 광기가 휘몰아치는 시기에는 그리 똑똑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뉴턴은 역사상 세계 3대 자산버블 중 하나로 꼽히는 1720년 영국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 거품 당시 이 회사 주식을 고점에 샀다가 저점에 팔아 엄청난 손해를 입은 뒤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천체의 운동을 계산할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그는 남은 생애 내내 ‘남해’(South Sea)’라는 이름을 듣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어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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