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DC 경쟁? 늦어도 괜찮다
CBDC 발행은 리스크 많은 도전, 선발 주자의 경험에서 보고 배우는 편이 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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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Koning
JP Koning 2020년 11월4일 10:11
출처=언스플래시
출처=언스플래시

미국은 뒤처지고 있는 것일까? 중국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미국은 여전히 고민만 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겉으로는 뒤처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디지털화폐에 대한 접근방식에서는 미국이 옳다.

CBDC 발행에는 '선진입자 우위'가 없다. 선진입자 우위란 통상 시장에 먼저 진출하는 사람이 그 시장을 장악하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하지만 CBDC 발행에서는 선진입자 우위보다 오히려 후발자 우위가 있다. 중앙은행들은 마음이 급한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이 새로운 디지털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반면교사 삼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CBDC는 무엇인가?

이미 많은 중앙은행은 디지털 결제 업무를 처리하고 있지만, 이는 은행 등 금융기관만을 대상으로 한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결제 업무는 현금으로 제한돼 있다. CBDC는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디지털 형태로 발행하는 화폐로, 일반 대중에게 직접 공급할 수 있다. 당신과 내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발행하는 디지털 달러나 일본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엔을 각자의 디지털 지갑에 넣어두고 이 돈으로 커피를 사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CBDC는 백서나 중앙은행 의견서 등에 등장하는 이론적 개념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최근 중국 인민은행이 CBDC를 발행해 시범운용을 마쳤고, 스웨덴은 개념증명 작업에 착수했으며, 바하마는 자체 CBDC인 샌드달러(sand dollar)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한편 그동안 CBDC에 대한 발언을 자제해 온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최근 “먼저 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나는 파월 의장의 접근 방식이 옳다고 생각한다.

 

선발자의 우위는 없다

일반적으로 시장에 가장 먼저 진입하는 자에게는 상당한 혜택이 돌아간다. 비트코인의 경우가 그렇다. 비트코인보다 기능적으로 우월한 블록체인이 수두룩하지만, 가장 먼저 시장에 등장한 것은 비트코인이었다. 그만큼 브랜드 이름을 쌓고 이용자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고, 비트코인보다 우월한 암호화폐가 이를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은 경쟁을 받지 않는다. 페이팔과 같은 결제 업체나 상업은행은 대규모의 디지털달러를 처리할 수 있지만, 리스크가 없는 법정화폐를 만들어내고 발행, 유통할 수 있는 권한은 중앙은행에만 있다. 이처럼 중앙은행은 경쟁을 받지 않기 때문에 천천히 움직여도 지장이 없다.

아울러 중국이 디지털 위안을 발행한다고 해서 달러가 국제 기축통화의 위상을 잃을 것을 우려할 필요도 없다. 전 세계가 미국 달러에 의존하는 이유는 그 발행 형태 때문이 아니라, 굉장히 강력한 금융의 중심이 뉴욕에 있고, 미국의 거대한 경제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준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오히려 가장 마지막 주자가 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

 

위험한 길

자전거 경주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전략 중 하나는 다른 주자들이 나를 앞서가도록 하는 것이다. 맨 앞에 있는 주자는 바람의 저항을 온몸으로 받지만, 뒤따르는 주자들은 그 덕분에 힘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CBDC를 발행하는 데도 곳곳에 리스크가 숨어 있는 만큼, 같은 전략을 취하는 것이 옳다.

우선 우리는 CBDC의 발행이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에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경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은행에 맡겨둔 돈을 완벽한 안전이 보장되는 CBDC로 전환하기 위해 예금자들이 은행에 몰리면서 더욱 심각한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우려한다.

일반 대중이 새로운 결제 시스템을 원하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1990년대 초 핀란드 중앙은행은 아반트(Avant)라는 스마트카드 시스템을 도입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이 여파로 스마트카드 발행사 몬덱스(Mondex)는 1990년대 말에 문을 닫았다. 아울러 CBDC에 대한 도전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파월 의장을 비롯해 통화 당국이 맡은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인 통화 정책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

 

실시간 결제는 이미 이뤄지고 있다

아울러 CBDC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알려진 혜택 중 일부는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다. 디지털달러 프로젝트(Digital Dollar Project)를 이끄는 크리스토퍼 장칼로 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은 미국이 CBDC를 발행하면 즉시 결제라는 ‘새로운 옵션’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그는 올해 초 미국 정부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미국인에게 1인당 1200달러의 지원금을 지급했을 때 이런 즉시 결제 역량이 있었더라면 정책이 더 원활하게 추진됐을 거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 지원금을 신속하게 지급하기 위해 CBDC가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젤(Zelle), 마스터카드센드(MasterCard Send), 비자다이렉트(Visa Direct)와 같은 신규 네트워크와 더불어 더클리어링하우스(The Clearing House)는 실시간 결제 시스템을 통해 이미 미국 전역에서 실시간 국내 P2P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연준도 2024년까지 자체 지급결제 플랫폼인 페드나우(FedNow)를 출시할 계획이다. 국제적으로는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나 웨스턴유니언(Western Union) 같은 기업이 실시간 국제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CBDC가 없어도 미국에서 인도 등의 다른 나라로 실시간 송금이 이뤄지고 있다. 스위프트(SWIFT)의 국제결제표준(GPI) 역시 국가 간 기업 결제 속도를 높이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

또 다른 장애물도 존재한다. 지금까지 연준은 일반 대중과 직접 상호작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CBDC를 발행하면 변덕스러운 고객들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 어떻게 홍보를 해야 하는가?

일반 고객을 상대하려면 고객 응대 및 서비스 센터를 갖춰야 한다. 결제 사기나 오류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때 연준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결제를 취소하고, 고객에게 보상하는 경우라면, 전문적인 분쟁 조정 기능을 갖춰야 한다. 누군가 몸값으로 CBDC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연준은 지급된 자금을 동결할 수 있는가?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결제 시스템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다. 자유주의자들은 거래의 익명성을 요구하겠지만, 연방수사국(FBI)은 자금의 흐름을 언제든지 추적할 수 있기를 원할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최대의 금융 포용성을 옹호하겠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이민자들이 포함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신분 확인 절차를 요구할 것이다. 이미 복잡할 대로 복잡한 연준과 의회의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때는 남들이 먼저 앞서가도록 두는 것이 현명하다.

연준도 CBDC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백서를 발간하고 관련 컨퍼런스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른 주자들이 CBDC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실험을 해볼 수 있도록 재촉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유럽, 스웨덴, 영국, 캐나다와 같은 나라들에서 이 새로운 기술을 시험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일찌감치 CBDC를 도입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정치적, 법적, 기술적 문제점들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해결이 어려운 문제라고 판단된다면 CBDC 도입을 추진하지 말아야 하고, 해결 가능한 문제라면 해결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늦게 출발할수록 더 많은 정보를 안고 출발할 수 있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가장 먼저 앞서가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먼저 도전하려는 사람이 없는 경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기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CBDC가 현실에 도입되려면 선진입자의 우위라는 신기루를 좇는 무모한 자들이 있어야 한다.

·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
· Translated by NewsPepperm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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