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과 블록체인의 미래
마이클 케이시 주간 연재 칼럼 ‘돈을 다시 생각하다’ 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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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J Casey
Michael J Casey 2020년 11월9일 09:11
백악관. 출처=Aaron Kittredge/Pexels
백악관. 출처=Aaron Kittredge/Pexels

다행히 미국은 완전한 내전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진 그렇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역사상 가장 어렵게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승리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선거 결과에 대한 생각이 어떻든 간에 현재 미국의 상황이 모두 괜찮다고 믿는다면 그건 정말 우둔한 사람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는 대도시 외곽에 사는 불만에 가득 찬 백인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올해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미국 전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인권 운동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는 것을 고려할 때, 극명하게 갈린 양쪽 표심이 주장하는 독설 가득한 음모론은 미국의 정부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과도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글로벌화와 디지털화의 바람이 아메리칸 드림을 날려버렸다. 이른바 ‘러스트 벨트’라 불리는 주로 미국 중서부 지역에 밀집한 많은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과 아이들의 미래가 밝다고 믿지 않는다.

지난 20세기에도 그러했듯, 잃어버린 아메리칸 드림을 되찾아오자는 이념적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드는 이유다. (좌파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매기고 중산층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확대하길 바라지만, 우파는 이를 사회주의라 칭하며 일자리 창출을 막아설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여기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거버넌스 자체가 망가져 버린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신을 위해 일하는 정부가 없다고 느끼며, 아무도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기득권이 정해놓은 정책은 바꿀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글로벌화된 경제와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회에 어울리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투명성과 책임, 효율을 중시하며, 기득권의 숨겨진 자금이 지닌 영향력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 말이다.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는 여전히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블록체인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을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다만 본지의 주필인 마크 호크스타인의 명언대로, 코인데스크가 지침으로 삼고 있는 말을 빌리려 한다.

블록체인이 모든 해답을 쥐고 있진 않지만, 적어도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거대한 사회적 이슈를 탈중앙화와 프로그램 가능한 계약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잘못된 생각을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중앙화된 방식으로 정보와 거래를 통제하는 행위가 어떤 방식으로 큰 권력을 지닌 이해집단들이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돕고, 또 이를 통해 자유 시장이 얼마나 약화되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들의 해결책이 될 새로운 공개 정보와 인센티브 모델을 개발할 수 있도록 창의적 사고를 도울 것이다.

‘뭐든 블록체인상에서 하면 된다’는 말이 아니다. (특히나 블록체인 투표는 정말 좋지 않은 생각이다) 정해진 틀을 깨는 사고를 하라는 뜻이다.

이번 주 ‘돈을 다시 생각하다’ 팟캐스트에서는 쉴라 워렌과 내가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두 초대손님을 모시고 거버넌스 개선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제곱 투표와 공개 경매

첫 번째 게스트는 마이크로소프트 뉴잉글랜드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자 정치 경제학자인 글렌 웨일로, 그는 시카고대학교 법학대학원의 에릭 포즈너 교수와 ‘래디컬 마켓(Radical Markets)’이란 책을 같이 썼다. 우린 이 저서에 나오는 수많은 아이디어 가운데 두가지를 골라 자세히 다뤄 보았다.

첫 번째는 제곱 투표(quadratic voting)였다. 제곱 투표란 사람들에게 특정 이슈에 대한 찬반을 표할 수 있게 하면서도, 배정된 크레딧(credit) 한도 내에서 표를 추가로 구매할 수 있게 해 자신의 의견이 얼마나 굳건한지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한 투표 방식이다. 표를 하나씩 더 살수록 크레딧 비용은 제곱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특정 이슈에 대해 강한 의견을 가진 소규모 유권자 집단에 도움이 되지만, 그러면서도 결과가 지나치게 왜곡되지 않도록 설계됐다.

웨일은 이더리움(Ethereum) 창립자 비탈릭 부테린과 함께 제곱 투표 개념에 변화를 준 제곱 펀딩(quadratic funding)이라는 개념을 만들기도 했다. 이론상 제곱 펀딩은 자금 규모나 기여도를 기반으로 한 투표 시스템에서 부유한 ‘고래’ 투자자들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다음으론 ‘영구적 공개 경매’에 대해 다뤘다. 영구적 공개 경매란 우리가 공공재로 여기는 것들을 포함해 모든 종류의 자산을 민간 기업이 소유하도록 하자는 것인데, 여기엔 해당 자산이 언제라도 경매 대상이 될 수 있고, 자산 가치의 대부분을 시민 모두가 사회적 배당으로서 동등하게 공유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웨일과 포즈너는 그렇게 할 경우 자산을 소유한 사람들이 자산을 잘 관리하게 만들 수 있으며, 창출되는 부를 더 널리 분배함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사업을 시작할 자금을 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또 토지의 확보가 용이해져 개발사에서 고속철도 같은 기반시설을 지으려고 할 때 토지 개발 작업도 더 쉬워질 것이다.

이 두 아이디어 모두 소프트웨어나 분산 컴퓨팅 자체보다는 법이나 절차상 혁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암호화폐, 블록체인 업계와 관련된 개념들과도 자연스레 맞닿는 지점이 있다.

먼저 제곱 투표를 조작할 수 없도록 자기주권 신원(SSI)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스마트계약이나 NFT(대체불가능 토큰) 기반 자산, 그리고 AMM(자동화 마켓메이킹) 등 탈중앙금융(DeFi) 개념들이 공개 경매를 더 강화할 수도 있다. 이 밖에도 부테린은 제곱 펀딩을 통해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무임승차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똑똑한 조세

이번 주 팟캐스트의 또 다른 초대손님은 언스트앤영(EY)에서 세제 혁신 부문 글로벌 총괄을 맡고 있는 제프 사비아노였다. 그는 세계은행(World Bank), MIT 미디어랩(MIT Media Lab)의 연계 과학 연구소(Connection Sciences lab), 뉴아메리카 재단(NAF) 같은 기관들이 세금 징수와 분배 과정에서 투명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각국 정부와 공조하고 있는 프로스페리티 콜라보레이티브(Prosperity Collaborative)의 회원이기도 하다.

그는 블록체인 기반 추적 시스템을 통해, 납세자들이 세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화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예컨대 실제 이용자가 낸 고유 식별된 달러가 이용자와 이용자가 속한 커뮤니티에 즉각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식별 가능 서비스에 투명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아니면 정부에서 스마트계약을 활용해 해당 자금이 특정 목적으로만 사용되도록 엄격한 제약을 적용할 수도 있다.

 

사회적 규약의 회복

이 아이디어들의 실효성 여부를 떠나 정책 입안자들은 정부와 국민 사이에 맺은 사회적 규약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신뢰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 관계 속에서 주인은 바로 우리다. 우리의 대표자 역할을 하는 정부 지도자들은 우리의 대리인이어야 한다. 하지만 신뢰가 부족할 때 사람들은 정부 지도자들을 경쟁자로 인식한다.

우리가 실패한 국가들에서 그동안 수없이 봐온 것처럼 자기실현적인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권력자가 부당하게 막대한 부를 쌓는 정부에는 사람들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 한다. 정권의 배를 불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연히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재원이 바닥나게 되고, 경찰을 비롯한 여러 공무원의 부패와 횡령이 만연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 모든 것의 끝은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수단인 통화가 무너지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네수엘라 같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초인플레이션 현상의 원인은 결국, 사회적 규약의 붕괴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비슷한 통화 붕괴 현상이 미국과 같은 서구 국가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걱정스럽다. 아직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이렇다 할 만한 인플레이션 위험이 나타나고 있진 않지만, 이번 달 급등한 비트코인 가격을 보면 이런 우려가 이해된다. 지난 5일, 비트코인은 1만5000달러 선을 돌파했다.

미래의 거버넌스 실패에 대비해 보호 장치로서 비트코인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런 실패를 막을 해결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중요한 시험을 망친 예측시장?

11월 3일 미국 동부 시각 밤 9시경, 대선 투표가 끝나고 초반 개표가 시작됐을 때 FTX 암호화폐 파생상품 거래소에서 트럼프 선물 계약 가격이 갑자기 치솟기 시작했다. 이틀 뒤 FTX가 최근 5일간의 시세 변화를 그래프로 그렸는데, 차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당시 트럼프 선물 가격은 0.40달러에서 0.80달러로 정확히 2배가 올랐다. 이는 FTX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확률을 80%로 점쳤다는 뜻이다. 그러던 11월 4일 아침, 이번에는 더 급작스러운 변화가 생긴다. 한때 0.80달러까지 올랐던 선물 계약 가격이 0.12달러로 급락한 것이다. 이후 트럼프 선물 계약 가격은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다.

FTX 웹사이트에서 5일 동안의 가격 움직임을 찍은 스냅샷. 출처=FTX/트레이딩 뷰
FTX 웹사이트에서 5일 동안의 가격 움직임을 찍은 스냅샷. 출처=FTX/트레이딩 뷰

가격이 이렇게 요동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선거 당일, 개표 초반 특히 미시건, 위스콘신, 펜실배니아 같은 경합주를 중심으로 트럼프의 우세가 뚜렷했다. 뿐만 아니라 사전 투표와 우편 투표 용지가 개표되면 바이든 쪽으로 세가 기울기 시작하리란 분석이 아직 나오기 전이었다. 그러다 바이든의 당선 예측이 나온 시점을 기점으로 FTX나 프리딕트잇(PredictIt) 등 예측시장이 내놓는 예측이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선이 치러지기 전, 정치인들은 한 주 내내 ‘붉은 신기루(red mirage) 효과’에 대해 경고했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선거 당일에 직접 투표소로 가서 투표할 확률이 높고, 바이든 지지자들은 상대적으로 뒤늦게 개표되는 사전 투표나 우편 투표를 할 확률이 높아서 개표 초반에는 트럼프가 우세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계속해서 들었었다. 다시 말하면 지금 굳어진 최종 결과를 실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즉, 선물 계약의 급격한 반등도 그 후의 매도세도 사실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이었다.

군중의 지혜도, 예측시장도 딱 거기까지인 듯하다.

지난 11월 3일 저녁, FTX는 투기 세력이 TV에서 떠드는 과장된 논평에 사람들이 이리저리 휩쓸리는 것을 이용해 단타 매매를 통해 돈을 벌도록 허용한 셈이다.

이번 대선은 예측시장의 진면모를 보여줄 기회였다. 역사상 가장 많은 이목이 쏠렸던 선거로 그만큼 팽팽한 접전이 예상됐기 때문에 전통적인 예측시장의 암호화폐 버전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계기로 ‘예측시장이란 원래 맞지 않는다’는 오명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만 또 하나 쌓이고 말았다.

‘돈을 다시 생각하다(Money Reimagined)’는 돈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하거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바꿔놓고 있는 기술, 경제, 사회 부문 사건들과 트렌드들을 매주 함께 분석해 보는 칼럼이다.

·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
· Translated by NewsPepperm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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