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과 금의 내러티브 경쟁
마이클 케이시 주간 연재 칼럼 ‘돈을 다시 생각하다’ 34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ichael J Casey
Michael J Casey 2020년 12월7일 10:26
​​​​​​​출처=게티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

 

내가 디지털 화폐에 관한 글을 쓰는 걸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디지털 화폐가 바꿔 놓으려는 기술과 아이디어가 고작 몇년, 혹은 몇십년짜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디지털 화폐는 수백년, 아니 수천년의 역사를 바꾸려는 시도다.

예컨대 금 같은 것 말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또다시 최고치를 경신하고, 블랙록(BlackRock) CEO 래리 핑크나 헤지펀드 업계의 전설 스탠리 드러켄밀러 같은 거물급 투자 전문가들이 비트코인을 ‘희소성을 입증할 수 있는 가치저장 수단’이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하자 금 지지자들과 비트코인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유명한 금 신봉자 중 한 명으로 금을 가치저장 수단으로 투자해야 하며, 금이야말로 화폐를 대신할 세계 표준이라고 주장하는 피터 쉬프가 특히 큰 목소리를 냈다. 지난 한주간 그는 트위터에 수많은 글을 게시했고, 비트코인을 ‘금이 지닌 물리적인 안전자산의 특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투기성 상품’이라 칭하며, 비트코인 투자자들에 비해 금 옹호론자들의 방송 노출이 현저히 적은 현실에 불만을 표시했다. (비트코인 지지자들이 단 재미난 댓글에 그가 보인 반응을 한 번 확인해 보라)

이 설전은 트위터에서 벌어진 악플 싸움 그 이상을 의미한다. 고대부터 내려온 이야기를 다시 써나가려는 암호화폐 커뮤니티의 대담한 노력이 그 배경이 됐다.

결국, 이 경쟁에선 이야기를 둘러싼 싸움에서 승리하는 게 중요하다. 이전에도 말했듯, 화폐에는 그 화폐를 가치 있게 만드는 여러 가지 특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화폐 자체에 대한 믿음이 없거나 화폐를 둘러싼 이야기가 공감을 만들어내지 못할 때 커뮤니티 안에서 그 화폐는 돈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출처=언스플래시
출처=언스플래시

 

왕과 정복의 역사

금 지지자들은 법정화폐의 가치 하락에 대비한 헤지 수단으로서 금을 바람직한 가치저장 수단으로 보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특성들 때문이라 말한다. 그 내용을 하나씩 짚어보자.

내구성. 금은 망가뜨릴 수 없다.

대체 가능성. 순금이라면 어떤 금괴, 금으로 된 바(gold bar)든 동일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거래와 가치저장 수단으로 받아들여진다.

가분성. 금은 제련 과정을 거치면 어떤 크기의 동전이나 덩이로도 만들 수 있다.

휴대성. 금은 적정 한도 내에서 운반이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특성인 희소성. 미래 실용성이나 소행성 채굴(asteroid mining) 이야기는 하지 않더라도, 전 세계에 매장돼 있다고 알려진 금을 모두 다 채굴하려면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드는지를 고려한다면 지폐로 된 법정 화폐와 달리 금은 공급량을 마음대로 늘릴 수 없다.

나는 비트코인 역시 이런 특성들을 갖고 있다고 본다. 오히려 금과 비교해 휴대성과 가분성이 더 뛰어날 뿐만 아니라 희소성도 더 믿을 만하다.

하지만 법정화폐가 아니면서도 좋은 화폐가 되려면 내구성과 대체 가능성, 가분성, 휴대성, 희소성이 필요조건이긴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은이나 백금 같은 귀금속들도 이와 비슷한 특성들이 있고, 비트코인과 완전히 똑같은 코드에 기반해 만든 알트코인도 있지 않은가. 금이나 비트코인이 이들과 다른 점은 공유 가치에 대한 집단적인 믿음이 두텁다는 점이다.

금의 경우엔 이런 믿음은 단순히 두터운 정도가 아니라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금은 미다스 왕의 신화에서처럼 동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엘도라도를 찾아 떠난 탐험길에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게 된 것도 모두 금 때문이었다. 금은 이렇듯 부와 권력의 동의어가 됐다.

사람들은 금을 본래 아름다운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란 문화적으로 만들어지는 거다. 물론 금이 돈으로 사용되기 이전부터 보석으로 사용됐었다는 증거가 있긴 하지만, 미(美)에 대한 생각을 뒷받침해줄 순환 논리가 있다. 금을 부와 권력과 동일시하는 관습이 수세기에 걸쳐 내려오면서 우리는 금을 아름답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즉, ‘반짝이는 모든 건 금’이란 이야기에서 오는 강력한 피드백의 회로가 있다는 것이다. 이 회로가 금의 문화적 힘을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데, 이는 금이 오랜 세월 보편적인 가치저장 수단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인 앞서 언급된 물리적 특성들보다도 더 중요한 특징으로서, 금세 사라져버리는 무형의 개념이다.

출처=게티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

 

수학을 기반으로 대중의 참여 비트코인

이처럼 비트코인 지지자들은 수천년을 이어온 문화적 무게를 지닌 현상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하지만 이젠 새로운 이야기를 쓸 때가 됐다. 오늘날 우리는 컴퓨터 세계가 실제 세상을 만들고 관리하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젠 실제 금이 아닌 디지털 금이 필요한 세상이다.

그리고 금처럼 오랜 세월 존재해온 인류의 또 다른 강력한 발명품으로서 인간의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수학’의 힘과 ‘사람들의 집단활동’의 힘을 합해 이런 디지털 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두 요소의 결합이 비트코인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사람들이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분산원장에 기록된 거래 내역들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인 작업증명(PoW) 합의 메커니즘은, 셀 수 없이 많은 숫자로 이뤄진 데이터 집합에서 임의로 고른 숫자를 찾아내는 게 수학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사실 때문이다. 여기엔 상당한 보편성이 들어있다.

비트코인의 입증 가능한 희소성은 수학만으로는 디지털 금의 핵심 요건이 되지 않는다. 수학적 요소 자체는 동일한 코드를 기반으로 한 알트코인 포크에서 보았듯 복제가 가능하다. 그보다도 기관투자자들이 거액을 투자하게 하는 가치저장 수단으로서 디지털 금이 되려면 사람들의 대규모 참여와 투자(시간, 돈,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비트코인의 통화 공급이 예측 가능하고 희소성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이용자 한 사람이 네트워크를 장악하려 할 때 들여야 하는 자금 규모가 너무 클 뿐만 아니라 코드 안정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개발자들이 전 세계에 충분히 많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이야기는 자기충족적인 방식으로 점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트코인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늘수록 투자자 수가 증가해, 네트워크를 공격하려면 점점 더 많은 자본이 든다. 한편 사람들의 신뢰가 늘어난다는 건 비트코인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일하는 개발자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요소로 인해 비트코인의 안정성은 계속 증대되고, 희소성 주장엔 더욱 힘이 실린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금에 대한 이야기보다 비트코인 이야기 쪽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왕과 정복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보편적 수학 원칙에 따라 사람들의 참여로 만들어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두 이야기 사이의 끈질긴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됐다. 앞으로 이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계속해서 기록해나갈 생각이다.

 

중앙은행들의 사재기

금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융전문 뉴스 매체 핀볼드(Finbold) 기사 중 아래 차트가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게 생각난다. 세계 12대 경제 대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중앙은행에서 2020년 3월~12월 초까지 208.34톤에 달하는 금을 사들였다는 통계다.

이들 4개 국가가 사들인 금의 양은 나머지 8개국이 팔아 치운 금의 양(12.78톤)과 확연히 비교된다. 다만 자료의 출처가 불분명하고,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금 보유량 정보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은 유념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이 수치들은 관심을 가질 만하다.

각국 중앙은행의 금 보유고 변화 (2020년 3월 ~12월) 출처=핀볼드
각국 중앙은행의 금 보유고 변화 (2020년 3월 ~12월) 출처=핀볼드

코로나19 대유행이 글로벌 위기를 촉발한 이후 왜 이 4개국은 금 보유량 확대에 나섰을까? 언뜻 생각나는 답은 개인과 마찬가지로 정부들도 금을 경제나 통화 압박 상황에 대비한 헤지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경제 위기가 이런 위험을 증폭시켰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4개 나라를 각각 따로 놓고 보면 다른 가설이 나올 수 있다.

미국과 인도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Fed)으로서는 팬데믹 이후 실시한 대규모 통화 확대정책 때문에 금융자산으로 이뤄진 대차대조표 확대가 불가피했고, 그중 금이 여러 자산 중 하나로 들어갔을 것이다. 인도의 경우엔 주로 문화적인 이유로 전통적으로 금을 많이 사들였으며, 이번 수치 역시 그 연장 선상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엔 더 흥미롭다. 원래 이들은 미국 국채 형태로 달러를 사들여 준비 자산으로 보유하는 국가들인데, 중국과 러시아가 금을 사들인다는 건 달러의 신뢰도 하락을 암시하기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이렇게 사들인 금으로 향후 무엇을 할지다.

이와 관련해 커먼스 프로젝트(Commons Project)의 대표 제니퍼 주 스콧은 재미있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최근 ‘돈을 다시 생각하다’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중국의 금 보유량이 급격히 증가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정확한 보유량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스콧은 중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디지털 위안화의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디지털 위안을 발행하면서 중국은 이 화폐가 금과 연동된다는 말할 필요도 없을 거다. 그저 ‘실제 인민은행이 금을 4000톤 보유하고 있다’는 발표만 해도 될 것이다(핀볼드는 현재 중국의 금 보유량을 2196톤이라 집계했다).”

그렇게 되면 디지털 위안은 탄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국가들에 디지털 위안 사용을 장려할 수도 있다. 동시에 중국이 자본 통제를 멈췄을 때 겪게 될 변동성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위안화 사용을 확대하려면 자본 통제는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그럼 러시아는 어떤가? 러시아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화폐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달러 의존성을 낮출 메커니즘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러시아는 미국의 제재를 피하겠다는 목표를 노골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금을 다량 보유하는 게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국가들이 자국 통화에 대한 안전장치로서 금보다는 비트코인을 사 모으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돈을 다시 생각하다(Money Reimagined)’는 돈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하거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바꿔놓고 있는 기술, 경제, 사회 부문 사건들과 트렌드들을 매주 함께 분석해 보는 칼럼이다.

·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
· Translated by NewsPeppermint.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