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현타→코인의 늪 “잘 때도 1시간마다 알람, 왜냐고요?”
한 30대 직장인 ‘주식·코인 입문기’
적금만 들다 저금리에 좌절한 게 계기
주식처럼 장마감도 없는 암호화폐 세상
24시간 쳐다보느라 밤잠도 제대로 못 자
“주식으로 쥔 실제 수익 40만원, 코인 0원
저금리 생각하면, 주식·코인 하는 게 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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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빈 한겨레 기자
이주빈 한겨레 기자 2021년 4월22일 17:57
출처=Susan Cipriano/Pixabay
출처=Susan Cipriano/Pixabay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다시 불며, 최근 ‘코인판’에 뛰어드는 2030 세대의 움직임이 도드라지고 있다. 이들의 투자 열풍 배경에는 코로나19 사태로 고용 불안과 소득 감소에 시달리며 위기감이 커진 가운데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영원히 자산을 쌓을 수 없다”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동산은 엄두를 못 내고, 주식도 기대가 꺾이며 암호화폐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암호화폐 투자를 하는 이들은 지금의 투자 열풍이 ‘투기’나 ‘한탕주의’가 밀어 올린 현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대박의 꿈’을 놓지 못한다. <한겨레>는 직장인 이현민(33·가명)씨의 ‘주식·코인 입문기’를 통해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2030 세대의 마음을 엿봤다.

1.9, 2.0, 1.9, 2.1….

열 번이나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휴대전화 너머 들려온 숫자는 ‘2.1%’을 넘지 못했다. 애초부터 제1금융권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직장인 이현민(33·가명)씨는 지난 2월 말, 적금을 들기 위해 온종일 집과 회사 근처에 있는 제2금융권인 신협·새마을금고 등에 전화를 돌렸다. 금리가 낮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혹시 특판으로라도 나온 게 있을까’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여러 지점을 알아봤지만 금리가 터무니없이 낮더라고요.”

적금이 유일한 재테크였던 이씨에게 그날 이후부터 친구들의 단체채팅방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신 포함 6명이 있는 채팅방에 5명 전부가 매일 같이 주식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잡주에 물린 게 너무 많다’ ‘배당 때문에 더 내려간다’ ‘곧 락업해제라 일단 팔았다’… 이씨는 친구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라면 그냥 넘겨버렸을 테지만, 결국 적금을 들지 못한 이씨는 그날따라 소외감을 느꼈다. 이씨는 비장한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주식 시작할래.”

저금리에 실망…친구들 주식 이야기에 솔깃

이씨는 우선 주식과 관련된 책부터 찾아보기 시작했다. ‘3년 만에 30억 벌고 퇴사한 슈퍼개미’라는 표현에 심장이 뛰었다. 이씨가 몰랐던 세계가 거기에 있었다. 친구들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도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더는 늦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3월8일, 이씨는 처음으로 주식 계좌를 만들었다.

‘초기에는 시드머니 200만원으로 시작하면 된다.’ 책에서 알려준 대로 주식 계좌에 200만원을 넣었다. 주식을 오래한 친구에게 종목을 추천받았다. 처음 보는 이름의 기업이었다. 이름을 보고도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200만원을 다 털어 주식을 샀다. 그러자 다른 친구가 “현금 보유를 반 정도는 해야 ‘물타기(주식투자자들이 매입 주식이 하락하면 그 주식을 저가로 추가 매입해 매입평균단가를 낮추는 투자법을 이르는 말)’를 할 수 있다”고 조언해왔다. 이씨는 곧바로 주식 계좌에 300만원을 더 입금했다. 그렇게 적금에 들어갈 수도 있었던 500만원이 모두 주식계좌에 들어갔다.

책에서는 차트를 분석하고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라고 돼 있었다. 하지만 막 주식을 시작한 이씨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자신의 감으로만 매수할 수도 없었다. 3일 만에 그는 주식 관련 카페에 가입했다. “○○○○, 외신에서 첫 공개. 곧 우리나라 언론에도 나올 듯. 급등 유력” “△△△△△△, 차트 바닥이어서 더 매력 큼. 아침에 □□□□□(외국 투자가)이 매수. 지수 하락하지만 흐름 좋음” 그곳에서는 일명 ‘네임드(이름 난)’ 회원들이 실시간으로 뉴스를 파악해 종목을 선정해주고 있었다. 외신과 유명한 투자가를 언급하니 신뢰가 커졌다. 시험 삼아 추천받은 종목을 몇 개 사보니 수익이 났다. 이씨는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리딩방에도 들어갔다. 3월22일, 이씨의 주식투자 앱에는 ‘+30만원’이 찍혀있었다.

‘관련주’로 세상을 보다

이때부터 이씨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필터’가 생겼다. ‘관련주’다. 미세먼지가 심해도 ‘관련주가 뭘까’부터 생각했다. 평소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던 정치인들의 지지율도 유심히 관찰했다. 이제 주식 용어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정치 테마주가 위험하다고 하지만 나는 단타스윙(주식을 하루~며칠만 보유하는 방식)이라 괜찮아.” 입문 3주 만에 이씨는 지인들에게 종목을 추천해주기에 이르렀다. 이씨는 마치 자신이 ‘투잡러’가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오후 출근을 하는 날에도 주식 때문에 아침부터 눈이 떠졌다. “매도 타이밍에 상사의 호출이 오니 표정 관리가 안 되더라고요.”

“주식을 추천했는데, 친구 시드머니가 훨씬 커서 저보다 높은 가격일 때 매수를 했는데도 큰 수익을 버니까 ‘현타’가 왔어요.” 4월5일, 이씨는 주식에서 받은 ‘현타’를 조금이라도 극복해보려는 마음에 ‘코인’을 시작했다. 160만원을 넣고 주변의 추천을 받아 ‘호재가 있다’는 암호화폐 ‘헌트’와 ‘메탈’을 샀다. 무슨 호재인지는 몰랐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하루 만에 수익률 60%를 찍었기 때문이다. “코인 첫날 수익을 보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이렇게 돈을 벌어도 되는 건가 싶어서 두통까지 왔어요.” 심장을 뛰게 한 수익률은 잠시였지만, 이미 짜릿한 경험을 한 이씨는 코인을 벗어날 수 없었다.

“매주 로또를 사는 마음으로…”

이후 이씨의 생활은 코인 그래프처럼 급격하게 바뀌었다. “코인을 시작하고 주식은 지루해서 쳐다보지도 않고 있어요.” 이씨는 최근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고 했다. 주식과 달리 ‘장 마감’이 없는 코인을 다루려면 24시간 신경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자는 동안에도 1시간마다 알람을 맞춰뒀다. “이건 진짜 끝이 없는 도박판이에요.” 어느 날 친구에게 밥을 사러 체크카드만 들고 나갔다가, 통장에 있는 모든 돈을 코인에 넣은 것을 깨닫고 난감했을 때 순간적인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도 이젠 친구들을 만나면 코인에 대해 설명하며 이렇게 훈수를 두기도 한다. “메이저 코인들은 시총이 크니까 잘 안 움직인다”, “동전코인, 지폐코인들이 호재 터지면 확 오르고 확 내린다”, “비트코인이 올라가면 내 코인이 바닥을 친다” 등.

도지코인에도 소액을 투자한 그는 지난 21일 아침 ‘도지코인 폭락’이라는 뉴스 속보를 보고도 가슴이 철렁했다. 이씨의 도지코인 수익률은 오후 1시 -11.43%에서 저녁 6시30분 -8.77%가 됐다. 그냥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이씨는 알람을 끄고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고 했다. 22일 오전 11시에 다시 열어본 도지코인 수익율은 -15.85%였다.

현재까지 이씨가 실제로 손에 쥔 이익은 주식으로 40만원 정도다. 코인은 없다. 쏟은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오히려 마이너스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씨는 주식과 코인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했다. “금리를 생각하면, 잃을 위험성이 있어도 주식이나 코인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주 로또를 사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투더문’(사들인 코인이 달까지 수직으로 상승하길 바란다는 뜻)이라는 표현을 쓰며 ‘대박’을 꿈꾼다. 이씨의 꿈은 ‘달’까지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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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근 2021-04-23 04:32:37
소설 재밌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