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여, 중앙화의 유혹에 들지 말지어다
[이드콘2020 인터뷰③] 조영휘 헌트 공동창업자·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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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선 기자
정인선 기자 2020년 12월16일 18:33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의 탈중앙성과 이용자 친화적 디자인은 양립가능할까?

최근 이더리움 '존버(HODL, 장기 투자)' 촉진 서비스 네버루즈머니 프로토콜을 출시한 헌트(HUNT)의 조영휘 디자이너는 "현재로선 절대 불가"라고 말한다. 그는 특히 서비스의 핵심 가치가 블록체인의 탈중앙성과 불가분의 관계라면, 디자이너가 절대 중앙화의 유혹에 빠져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탈중앙화 요소와 중앙화 요소를 필요에 따라 섞는 '하이브리드'도 안 될 일이란다. 

오는 20일 이드콘2020에서 '댑(Dapp)이 몰고올 디자이너 댑항해시대'를 주제로 발표하는 조영휘 씨를 14일 미리 만났다.

조영휘 헌트(HUNT) 공동창업자·디자이너. 출처=정인선/코인데스크코리아
조영휘 헌트(HUNT) 공동창업자·디자이너. 출처=정인선/코인데스크코리아

―'댑이 몰고 올 디자이너 댑항해시대'를 주제로 발표 예정이다. 어떤 내용인가?

이더리움 출범 5년여가 지났다. 그런데 아직까지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 시장은 극초기 단계다. 댑이 4천여종밖에 출시되지 않았다. 그만큼 아직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다. 

앞으로 디파이를 필두로 탈중앙화 가치를 실현할 영역이 더 많이 생길 텐데, 그럼 디자이너의 역할도 점점 중요해질 거다. 헌트에서 지난 3년여간 스팀헌트와 노마드태스크, LOL헌트, 그리고 네버루즈머니 프로토콜까지 총 네 개의 댑을 만들며 겪은 딜레마와 솔루션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댑을 디자인할 때 흔히 겪는 난제엔 어떤 것들이 있나?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온보딩 타깃의 모호성,레이아웃 정보 구조화, 트랜잭션 관련 인터렉션의 시각화 등이다. 

우선 온보딩 타깃을 누구로 삼을지가 가장 중요하다. 중앙화 서비스의 경우엔 쉽다. 내 제품이 풀어줄 수 있는 문제를 가진 소비자를 찾아가서, 그에 맞는 온보딩을 하면 된다. 그런데 블록체인 쪽은 아직 문제 자체가 애매하다. 소비자가 겪는 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 새로운 영역에서 기존 산업을 대체하기 위한 서비스를 만들다보니 타깃이 모호해지기 쉽다. 그 상태로 디자인을 하면 온보딩 전략도 실패하기 쉽다. 

다음은 정보 구조화의 문제다. 디파이 제품 하나만 써봐도 알 수 있는 게, 블록체인 서비스에선 아직 전달해야 하는 정보가 너무 많다. 그 중 이용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구조화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대부분의 서비스는 이걸 한꺼번에 대시보드에 뿌리는 데에 그친다. 

마지막으로는 트랜젝션 관련 인터렉션을 시각화 해 이용자에게 보여주는 문제다. 트랜젝션을 일으키기 전 승인을 구하는 단계가 디파이 서비스를 많이 써 본 이들에겐 익숙할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생소하다. 이걸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이 필요하다.

―네버루즈머니에선 각각의 문제를 어떻게 풀었나?

우선 타깃을 좁게 잡았다. 암호화폐에 대한 지식은 좀 있지만, 디파이 서비스는 많이 써 본 적이 없는 이들을 주로 겨냥했다. 이자 농사 기반의 수익률 경쟁에 집중하는 일반적인 디파이 서비스들과 달리 '존버', 즉 암호화폐에 장기 투자하길 원하는 이들이 주 타깃이다. 

여러 이용자가 다같이 토큰을 들고 있을 락업 기간을 3개월, 1년 등으로 설정하면, 그 기간 동안 누군가 중도에 홀딩을 포기하고 빠져나갈 때마다 10%의 패널티를 내도록 했다. 그 패널티를 '존버'를 잘 하고 있는 이들에게 보너스처럼 뿌려 주는 거다. 

그런데 이걸 중앙화된 주체가 아닌 스마트 계약에 의해 실행한다는 게 네버루즈머니의 컨셉이다. 다만 패널티의 비율을 이용자가 직접 설정하도록 하려면 복잡도가 늘어나고 그로 인한 이탈도 커질 수 있어, 10% 정률 시스템을 택했다. 

네버루즈머니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토큰이 락업 됐는지, 그리고 거기서 발생한 보너스는 얼마인지, 수익률은 얼마인지다. 그래서 정보 구조화 과정에서 이 세 정보를 최상단에 배치했다. 

또 여러 토큰 풀과 관련한 데이터를 별도 페이지로 보여주기보다, 하나의 페이지에 넣되 탭 기능으로 쉽게 오가며 확인할 수 있도록 해 흐름이 끊기는 일을 방지했다.

조영휘 씨는 이용자가 꼭 알아야 하는 데이터는 무엇인지 우선순위에 따른 정보 구조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처=네버루즈머니/헌트
조영휘 씨는 이용자가 꼭 알아야 하는 데이터는 무엇인지 우선순위에 따른 정보 구조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처=네버루즈머니/헌트

 

―지난해 이드콘에도 서비스 디자인 관련 발표가 있었다. 블록체인 분야에서 개발 관련 논의에 비해 디자인 관련 논의는 아직 활발하지 않은데?

블록체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첨단 기술 기반 서비스 자체가 극초기 단계일 때는 매우 좁은 이용자층을 타깃으로 삼기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페이스북과 위챗을 두고 어느 쪽 기술이 더 뛰어난지에 대해 이젠 아무도 따지지 않는다. 무의미한 논의가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도 그 정도 수준으로 기술이 성숙하고 이용자층이 넓어지면, 디자인과 사용성에 대한 논의 또한 점차 활발해질 거다.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 거라고 보나?

그걸 알 수 있었다면 아마 진작 전 재산을 투자하지 않았을까? 

다만 디파이가 등장하면서 금융이라는 분야에서 하나의 메인스트림이 탄생했으니, 시점이 '예측불가'에서 '3~4년 뒤' 정도로 앞당겨지긴 한 것 같다. 

―블록체인 서비스 디자인을 새로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스팀헌트를 디자인 할 때 이런 적이 있다. 이용자들이 쉽게 로그인할 수 있도록, 서비스 내에 스팀 블록체인의 인터페이스를 그대로 가져와서 보여줬다. 그런데 탈중앙화의 가치를 신봉하는 이용자들 입장에선 서비스 운영 주체가 중간에서 개인키를 중앙 서버에 저장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발생했다. 

이용자들의 편의를 고려해 중앙화 서비스와 유사해 보이도록 디자인을 했다가, 그로 인해 탈중앙화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큰 공격을 받게 된 거다. 

언제나 내가 디자인하려는 제품의 핵심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잘 따져 봐야 한다. 만약 탈중앙성이 그 중심에 있다면, 중앙화의 유혹에 절대 흔들려선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이용자가 좋아하겠지' 하고 섣불리 가져온 중앙화적 요소가 오히려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늘 유념해야 한다.

인터뷰 다음 날인 15일 헌트는 '존버' 촉진 서비스 네버루즈머니 프로토콜을 정식 출시했다. 출처=헌트
인터뷰 다음 날인 15일 헌트는 '존버' 촉진 서비스 네버루즈머니 프로토콜을 정식 출시했다. 출처=헌트

지금 디파이 시장 규모가 커지는 건, 해당 분야에서 탈중앙화의 가치가 크다고 보는 이가 많아지면서 불편한 사용성쯤은 개의치 않게 되는 전환점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용자 친화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까진 중앙화 기반 서비스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이걸 기준으로 탈중앙화 서비스의 디자인을 이용자 친화적으로 만든다는 건, 마치 집에서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는 게 편한 미국인들에게 신발을 벗고 돌아다니길 강요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실내용 슬리퍼를 주는 걸로 편의성을 어느 정도 높일 수는 있겠지만, '맨발이 드러나는 게 불편하다'는 핵심적 차이를 해소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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